놓고 놓고 또 놓고

요즘은 왠만한 거리면 으레 자동차 혹은 엘리베이트 등을 이용하여 이동하다보니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은 듯 하다. 이런 생활에 젖어 지내면서 걷는 일은 운동을 위해 우정 찾아서 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걸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한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르침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려운 듯 하다.

걸음걸이란 한발을 내디딘 후 나머지 한 발을 연이어 떼어 놓는 행위이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한걸음을 내디디고 나머지 발을 연이어 떼어 놓으려 할 때 발을 내디딘 행위가 마음에 들어 발을 내디디기만 하려 하고 뒤처진 발은 내 몰라라 한다든가 아니면 뒤처진 발이 마음에 쏙 든다고 뒤처진 발에 애착을 쏟고 있으면 걷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또 걷는 도중에도 내디딘 발이건 뒤처진 발이건 어느 한 쪽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교차하게 되면 내 발에 내가 걸려서 넘어지거나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아니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즉, 순조로운 걸음걸이는 내디딘 발에도 뒤처진 발에도 좋다 싫다 등의 시비분별하는 생각이 머물지 않을 때 그냥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잘 걷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한걸음 한걸음, 일상적 삶 자체 그대로가 사실은 내디디는 발, 뒤처진 발 그 어떤 것에도 시비분별하는 마음, 미련과 집착하는 마음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걷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 점이다. 발걸음 하나 하나의 행위 그 자체 이외에 좋다, 싫다, 아깝다, 더 가지고 싶다, 사랑스럽다, 짜증스럽다, 화난다 등등 그 어떤 생각도 붙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붙을 사이조차도 없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면 걸음걸이가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각자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나 아니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잘했다 못했다 사랑한다 미워한다 등등의 온갖 생각들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들로 인해 너무나도 크고 무거운 고통, 즉 후회, 애착, 증오 등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으면서도 그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미 그 생각을 유발한 행위는 사라지고 없는데 그림자조차 없는 지나간 행위 또는 오지도 않은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붙여 놓고는 마치 그것을 떨치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스스로가 생각으로 지어 놓은 창살아닌 창살이 있는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그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가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이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집착을 놓으라(放下着)'고 가르친다. 일체의 실상을 바로 알고 보면 따로 놓을 일조차 없겠지만 이미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집착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바로 보고 집착을 놓아가는 연습을 애써 해야 한다. 온 몸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헬스장 등을 이용하여 근육을 단련하는 일을 땀흘려 가며 해야 하듯이 마음으로 지어 놓은 창살아닌 창살을 끊어내고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서 그런 집착을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생각의 회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말, 행동, 마음씀씀이 일체를 할 때 그것들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 행동, 마음씀씀이는 내 몸을 빌렸을 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그런 다음 말, 행동, 마음씀씀이에 있어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 원동력에게 '네가 혹은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세요' 혹은 '당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잖습니까, 당신이 해결하십시요'라고 속삭이면서 문제해결을 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원동력이 있음을 믿고 문제해결을 하도록 맡겨 놓는다고 해서 '믿고 놓아 맡기기'라고 할 수 있고, 문제가 있는 말, 행동, 마음씀씀이를 나온 곳으로 되입력시켜서 해결한다고 해서 '되돌려 놓아 맡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컴퓨터로 치자면 일종의 명령입력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문제가 지엽적으로가 아닌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의 눈으로 원동력이 어떤 출력을 내 보내는지를 지켜보는 일 뿐이다. 출력결과에 대해 만족스런 마음이 들면 '고맙습니다'하고 그 원동력에 다시 입력시키고, 만약 불만족스런 마음이 들면 '오로지 당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해결하세요'라고 다시 입력시킨 후 지켜보면 된다. 감사한 마음이 들때까지....

이런 식의 새로운 생각방식, 즉 마음의 운전방식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그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로지 묻고 감사하고 묻고 감사하고 또 묻고 감사하는 방식의 마음운전을 통해 사실은 놓을 필요도 없는 일체를 놓고 놓고 또 놓아가는 것이며 마침내는 마음의 감옥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으로 쉽고 간단하지 않은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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