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1985년 훈련 중 실수로 발견한 ‘정전폭탄’
사고는 은폐하고 극비리에 개발 진행
1991년 걸프전 첫 사용, '99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본격사용
2003년 이라크 전에서도 사용해 ‘전력마비’

 
1985년 1월 10일 캘리포니아 샌디에고(San Diego) 부근에서 미 해군은 수천 파운드의 채프(Chaff)를 투하해 레이더 추적을 회피하는 훈련을 했다. 채프가 뿌려지면 전자파를 교란시켜 레이더는 목표물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훈련 기간 중 샌디에고 지역에서 3시간 동안 전기공급이 중단되면서 6만 5천여 시설에 정전이 발생했고 신호등도 꺼져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그러나 미군 당국과 전력 회사는 증거가 없다며 훈련과 정전사고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반면 미군은 정전 사고를 계기로 탄소섬유탄(Graphite Bomb)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한동안 이 사실을 극비로 관리했다.
 
 

1985년 미 해군이 살포한 채프는 샌 오노프레(San Onofre) 원자력발전소 또는 여기에서 도시로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소는 샌디에고에서 남쪽으로 10마일 떨어진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8부터 순차적으로 3개의 원자로를 가동했다.사진은 1987년 모습으로 당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전력을 공급했던 발전소였고 2013년 이후 가동을 중단하고 해체를 시작했다. [사진 SDG&E]

1985년 미 해군이 살포한 채프는 샌 오노프레(San Onofre) 원자력발전소 또는 여기에서 도시로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소는 샌디에고에서 남쪽 10마일 부근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8부터 순차적으로 3개의 원자로를 가동했다.사진은 1987년 모습으로 당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전력을 공급했던 발전소였지만 2013년 이후 가동을 중단하고 해체를 시작했다. [사진 SDG&E]

 
나중에 밝혀진 사실을 보면 해군 항공기 30여대가 해안에 살포한 채프가 바다에 떨어져야하는데 발전 설비에 낙하해 전기공급이 마비된 것이다. 채프는 알루미늄 등의 금속물질이 코팅된 종이나 플라스틱 조각 또는 이보다 작은 머리카락과 유사한데 레이더에서 만들어낸 전자파를 반사한다. 문제는 이런 금속 조각 입자들이 송전선 등에 달라붙어 전력망과 전자 장비의 오작동을 일으켰다. 미군은 우연히 발견한 원리를 응용해 극비리에 무기로 발전시켰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탄소섬유탄은 발전소, 변전소, 고압송전 등의 전력설비를 마비시킬 때 사용하기 때문에 정전폭탄(Blackout Bomb)으로 불리기도 한다.
 
탄소섬유탄 개발 초기에는 연구개발 자체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질 정도로 민감하게 감춰진 무기였다. 비밀스럽게 개발하던 무기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1년 걸프전(Operation Desert Storm)이 처음이다. 미군은 탄소섬유탄을 장착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이라크 변전소를 공격해 이라크 지역 발전시설의 85%를 마비시켰다. 이라크의 통신설비도 쓸모없는 먹통이 되었다. 영국 방송사 BBC는 ‘Kit-2’로 불리는 탄두가 탄소섬유를 분사해 전기장비 합선을 일으켰다고 보도했지만 자세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코소보 폭격에 사용된 탄소섬유탄의 자탄 [사진 글로벌 시큐리티]

코소보 폭격에 사용된 탄소섬유탄의 자탄 [사진 글로벌 시큐리티]


탄소섬유탄의 구조를 보면 탄두 안에 다수의 자탄(子彈)을 갖고 있고 탄두가 폭발한 후 자탄은 분리 및 확산된다. 자탄에서는 화학 처리된 흑연(탄소) 필라멘트가 살포되어 짙은 구름처럼 공기 중을 떠다닐 수 있다.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공급시설에 떨어지면 전기 합선과 누전을 일으켜서 전력 공급을 차단한다. 흑연은 전류의 도체 역할로 전기 합선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합선이 보다 잘 일어나도록 전도가 높은 니켈 등 다른 물질을 도금하기도 한다. 전기 합선이 일어나면 화재나 폭발로 이어져 더 큰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라크 나시리아 발전소에 투하된 탄소섬유탄의 자탄 [사진 Human Rights Watch]

이라크 나시리아 발전소에 투하된 탄소섬유탄의 자탄 [사진 Human Rights Watch]


탄소섬유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9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었다. 내전 당시 NATO군은 전력망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미 공군 스텔스 폭격기(F-117A)에 탄소섬유탄(CBU-94)을 장착해 코소보 공습에 사용했다. 탄소섬유탄이 투하된 지역에서 음료수 캔 크기 조각, 탄소섬유가 들어있는 클러스터 자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겉에는 ‘BLU-114/B’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통상 ‘BLU'는 실탄을 의미하는 군사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항공 폭격이 시작되고 6주나 지나서 처음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실전용 보다는 실험용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미 공군이 2003년 3월 탄소섬유탄으로 공격한 이라크 나시리아 발전소 [사진 Human Rights Watch]

미 공군이 2003년 3월 탄소섬유탄으로 공격한 이라크 나시리아 변전소 [사진 Human Rights Watch]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무기 중 하나라면서 논평을 거부했다. 반면 나토군 대변인은 유고슬라비아 70%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불을 켜고 끌 수 있다.”는 설명으로 나토군 개입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시 전기가 복구될 때까지 주요시설은 7시간, 일반 시설은 20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미군은 이라크 전쟁(Operation Iraq Freedom)에서도 탄소섬유탄을 사용했는데 미 공군에 공격받은 나시리아 변전소는 한달 동안 전기를 공급할 수 없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이라크 주요 핵심시설은 정밀 폭격과 전력 공급 중단으로 어떤 기능도 할 수 없었다. 전자장비는 전원을 켤수 없었고 통신 장비도 마찮가지였다. 이라크는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모두 가려진 상태에서 미군과 싸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승산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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